1500년 역사가 살아있는 금산으로의 여행
금산농악은 마을굿과 걸립굿의 요소를 함께 갖추고 있다. 판굿의 각 과정이 모두 독자적이면서 장단이 내고-달고-맺고-푸는 기승전결의 완결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판굿은 앞굿과 뒷굿으로 나누어지는데 앞굿은 악기와 개인놀이가 중심이며, 뒷굿은 잡색들의 춤사위 위주로 구성되어 음악적, 무용적, 연희적 요소가 모두 나타난다. 금산농악은 자생적으로 전승 및 전문화과정을 거친 것이 특징이다. 해방이후 여러 마을을 상대로 하는 걸립농악으로 발전하였고, 더 나아가 전국을 상대로 한 전문적인 예인집단으로 특화되었다. 금산농악의 계보는 상쇠인 김수동..
삼존좌상 모두 둥글넓적한 얼굴, 반듯한 코에 반개한 눈과 입매가 살짝 올라간 입술 등이 조화를 이룬 단정한 인상을 하고 있으며, 어깨가 폭이 넓고 허리가 길며, 무릎 폭이 넓어 전체적으로 균형있고 안정감이 있다. 석가불은 변형우견편단을 입고,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으며 옷주름 표현도 유연하면서 힘이 있음.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석가불과 같이 당당하고 균형 잡힌 신체를 하고 있다. 다만 문수보살은 어깨에 천의를 걸치고 보현보살은 편삼에 대의를 걸친 착의법을 하고 있으며, 서로 반대반향으로 연꽃 가지를 들고 있는 점 등에서 ..
미륵사 뒤편 암벽에 선각으로 옷주름을 새긴 뒤 그 위에 불두를 얹은 마애불이 있고 그 앞에는 깨져 일부만 남아 있는 석조삼존불입상이 위치한다. 삼존불은 본존불의 몸체 일부와 좌협시보살상의 일부가 큰 암벽에 얕게 선각되어 남아 있으며 그 주위에는 선각된 보살상들이 여러 편으로 나뉘어져 주위에 산재한다. 석조불두는 코가 깨져 일부만 붙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통통한 빰에 양감 있는 모습이며 측면향을 한 보살상은 손에 여의를 들고 있어 문수보살로 추정되며 보살상의 얼굴은 좌우 모두 본존을 향해 측면으로 서 있는데 자연스러운 자세의 아름다..
금산 인삼백주는 금산의 김녕 김씨(金寧金氏) 집안에 전해오는 전통적인 술 제조법이다. 술을 만드는 방법은 김씨 문중에 전해오는『잡록(雜錄)』에 기록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잘게 부순 통밀과 인삼을 섞어 3개월간 발효시켜 누룩을 만든다. 쌀로 고두밥을 짓고준비해두었던 누룩과 인삼을 섞어 밑술을 만든다.여기에 다시 약쑥·솔잎·인삼·고두밥을 섞어 40~60일간 숙성시킨다. 술이 다 익으면 압착기를 이용하여 거르고 고리를 써서 증류한다. 알코올 농도는 43% 정도이며, 인삼향기가 나며 빛깔이 부드럽다. 기능보유자인 김창수씨는 김문기의 18..
금강변 어재리 느재마을을 중심으로 인근 마을과 제원면(濟原面) 일대에서 치러지는 기우제이다. 농바우끄시기는‘농(籠)바위끌기’라는 뜻으로, 농바우는 느재마을에서 동남쪽 약 350m 떨어진 시루봉 중턱에 있는 바위로, 그 모습이 반닫이 농을 뒤집어 놓은 것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30대 이상 부인들이 주도하는데, 바위아래 계곡물에 여인네들이 알몸으로 떼지어 들어가 바가지로 물을 퍼 끼얹으며 물장난을 치고 놀면, 하늘이비를 내린다는 기우(祈雨)의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비를 기원하며 병에 솔가지를 꽂아 거꾸로 메다는 물병매기, 짚으로 ..
평촌리 물페기(일명 水村) 마을 일대에서 약 200년 전부터 전해오는 농요로, 농사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과정을 노래와 동작으로 표현한것이다. 충남에서는 드물게 전승(傳承)되어 오는 농사에 관계된 소리인데, 평야지대와 산악지대의 소리가 결합된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있다. 토지신에게 비는 제사, 모심는 소리, 두렁밟기, 아시매기, 두렁고치기, 재벌매기, 방아소리, 쌈싸는 소리, 장원놀이 등으로 구분된다. 이 마을은 금강 상류에 자리하고 있는데 비가 조금만 오면 심하게 물이 잠겨‘물페기’라고 불렀다고 하며, 현재는 둑이 완성되어 있다. 이..
이치(梨峙)는 대둔산 중허리를 넘어 전북 완주군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며 전략상 중요한 곳이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경상도와 충청도 일대를 휩쓸고 승승장구하던 1만여 병력의 일본군이 호남으로 나아가 군량미를 얻고자 이곳을 넘으려고 하였다. 이 때 먼저 길목을 지키고 있던 권율(權慄) 장군이 동복현감(同福縣監) 황진(黃進)과 1,5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결사적으로싸워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이로써 전주성(全州城)과 호남평야를 지킬 수 있었다. 임진왜란 최초의 육전 승리를 장식한 이 싸움을 이치대첩 또는 이치싸움이라고 하며, 여..
향교는 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자 선현(先賢)을 향사(享祀)하는 곳으로, 고을마다건립되었다. 진산향교는 원래 조선 초에 진산면 읍내리 606번지(현재의 진산중학교자리)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탄 후 보수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755년(영조 31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은 후 다시 보수를 하였고 1950년 6·25전쟁으로훼손된 후 다시 보수(補修)하였다.대성전(大成殿)에는 공자(孔子)를 중심으로 중국의 선철(先哲)과 우리나라의 18현(賢)의위패를 모시고 봄과 가을로 제향(祭享)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배향된 인물의 배..
향교는 조선시대의 관립교육기관이자 선현(先賢)을 향사(享祀)하는 곳으로,고을마다 건립되었다. 금산향교는 원래조선 초기에 금산읍 하옥리 백학동에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후에 다시 세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1684년(숙종10년)에 향교를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짓고 그 후 여러 차례 보수를 하였다.대성전(大成殿)에는 공자(孔子)를 중심으로 중국의 선철(先哲)을, 동무와 서무에는우리 나라의 18현(賢)의 위패를 모시고 봄과가을로 제향(祭享)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배향된 인물의 배향 순서는 시대에 따라 바뀌어왔다. 명륜당(明倫堂)은 유생들이 ..
백령성은 남이면 건천리와 역평리 선치산(해발759m) 동쪽의 정상부에 쌓은 석성으로, 금산군 제원면과 추부면을 지나 충북 영동과 옥천으로 연결되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는 산 정상 부분을 둘러쌓은 테뫼식이며, 성의 둘레는 207m이다.성벽의 동·남·북·쪽은 대부분 허물어졌으나서벽은 최대 7m정도 높이까지 남아있다. 성벽의 너비는 4m이다. 2004·2005년 2차에 걸쳐 남문지 및 북문지, 성 내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내부에서 목곽과 백제의관리명이 새겨진 명문기와 및 주거지 등이 확인되었다.유물로는 백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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