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역사가 살아있는 금산으로의 여행
천지개벽이다. 만물의 근언이 물에서부터 비롯되기에 물이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아주 먼 옛날 선사시대부터 농경생활을 해온 우리민족. 지금처럼 과학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근대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한해 농사는 오로지 하늘에 맡겨야 했다.
옛날에 우리 조상들은 모두 소처럼 열심히 일하면서 하늘이 도와주기를 빌고 또 빌었다. 홍수를 막아달라고 수살막이제를 지내는가 하면, 비를 내려달라고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언덕을 따라 시루떡 쌓듯, 층층이 개간한 다랑논을 두고 “천수답”이라 한 것도,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지 않으면 사람의 힘으로는 당해낼 수 없는 농경생활이었기 때문에 유래된 말이다.
왕이나 지방수령이 기우제를 지낸 사실에 관한 기록서인 ‘기우제등록(祈雨祭謄錄_조선 예조편찬)’에 의하면, 가뭄이 심할 때 왕이 친히 나서서 기우제를 지냈는가 하면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식사의 양을 줄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에는 나라에서 지내는 기우제뿐만 아니라 가뭄이 들면 온 나라 각처의 마을 주민들 또한 기우제를 지냈다. 충남 금산군 부리면 어제리 느재마을. 이 마을도 예외는 아니어서 먼 옛날부터 기우제와 관련된 민속신앙이 전해지고 있다. ‘농바우끄시기’가 그것이다.
농바우끄시기는 우선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부녀자들이 주관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극심한 가뭄이 있을 때만 행했다는 것이다. 당대를 지배했던 ‘남존여비사상’이나 조신함이 미덕이었던 당대의 풍습에서는 여성이 주관하는 민간행사는 흔치 않은 일. 웬만한 가뭄에는 나서지 않고 비가오지 않으면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절대 절명의 시기에 여성들이 나선 것이다. 1999년 발굴당시 이 마을 80세 가량 다수의 노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평생 4~5회 밖에 농바우끄시기를 못 보았다는 증언이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단농바우끄시기는 대체로 30대 이상의 마을 부인들이 참여하는데 남성들은 기우제에 필요한 짐을 날라다 주고는 그 자리에서 떠나야 한다. 이 때 선소리꾼 남성하나만 남는다. 산제가 끝나면 농바우끄시기 노래를 선소리·받음소리로 구성지게 진행하고, 농바우 아래 흐르는 계곡의 물에 떼지어 들어가 알몸으로 날궂이를 하고 끝을 맺는다. 하늘은 부녀자들이 하는 짓을 보고 너무 상스러워 비를 내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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